====== 어쩌다 마트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 | 평점 | ★★★★ | | 한줄평 | '마트' 대신 '은행' 을 넣어보자. 일은 일일 뿐이다 | {{:book:501.jpeg?nolink |}}[[477|나의 막노동일지]], [[435|청년도배사 이야기]] 같은 책이 생각나는 저자의 일에 대한 에세이다. '망한 남자들은 공사장으로 가고 망한 여자들은 마트로 간다'는 프롤로그의 제목이 흥미로웠다. 학교를 졸업하고, 전공에 따라 취업한 회사에서 1년 남짓 일하고 '이건 아니다싶어' 시작한 마트 일. 14년 간 여러 매장에서 일한 경험담을 적었다. 저자는 마트 일은 거기서(매장) 끝이고 집까지 따라오지 않는다는 점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낮에는 마트일을 하고 저녁에는 글을 쓰며 지금까지 총 7권의 책을 냈다.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시간 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 어렵다는 걸 알기에 그걸 해낸 저자가 대단해 보였다. 저자는 결코 부인하지만(다시는 마트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10년 넘게 같은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이 또한 쉽지 않다. 이쯤 되면, 어느 정도 적성(?)에 맞다고 생각한다(언젠가 전세계의 마트를 돌아다니고 싶다고 밝혔다). 요즘 드는 생각은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투철한 사명감과 보람을 느끼고 일하는 사람(덕업일치를 이룬)도 있겠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 않나. 과거를 돌아보면, 나도 한 때 '이 일이 적성에 맞아. 그렇기 때문에 이 일 아니면 안되' 라는 생각으로 일 자체에 과몰입했던 적이 있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싶다. 직업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으면 한다. 일은 삶에 있어 부분 중 하나다. 일이 그사람을 대표하지 않는다. 이책을 통해 손님의 시선으로만 보아오던 마트 일이라는 직업에 대해 새롭게 알게되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이 있지만, 10년, 100년 전에도 그랬듯 10년, 100년 후에도 직업에 귀천은 있을 것이다. 엄연히 있는 걸, 없다고 해봐야 소용이 있나. 따라서 중요한 것은 외부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본인의 가치관(신념)이다. ===== 기억에 남는 구절 ===== 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어렵게 사는 건 아니라는 사실쯤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그러나 정말 사정이 좋지 않아 떠밀리듯 마트 일을 하게 된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따지고 보면 평범한 노동이 다 그렇지 않을까. 일이 가지는 무게와 의미는 각자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니까. 이런 문장은 어딘가 어색했다.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워.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은행에서 일하시더라고.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워.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학교에서 일하시더라고.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워.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세무사 사무실에서 알하시더라고. 그러나 이런 문장은 익숙했다.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워.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식당에서 일하시더라고.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워.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주유소에서 일하시더라고. 사실 그 친구 사정이 좀 어려줘. 알고 보니까 어머니가 공장에서 일하시더라고. 은행과 식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교와 주유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차이를 만드는 게 단순히 돈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노력일까? 모두가 사랑해 마지않는 노력. 치열한 경쟁 끝에 보상처럼 주어지는 직업과 약간의 각오만 있다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이쪽과 저쪽의 경계는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걸까? 은행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보다 식당에서 일하고 싶은 사람이 더 많은 세계를 상상해보았다. 하지만 어쩐지 그 세계에서도 이 분류는 뒤집히지 않을 것 같았다. 은행과 식당의 차이는 무엇일까. 학교와 주유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나는 이제 그 질문에 확실히 대답할 수 있다.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중 가장 크고 중요한 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와 시선이라고. 은행에도 학교에도 진상은 존재하지만 그곳의 무례함이 이곳의 무례함과 같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마주치는 무례함의 기저에는 상대를 무시하는 마음이 깔려있다. '이런 일이나 하는 주제에 감히 네가?' 아무리 꼭꼭 숨겨도 예상치 못한 순간 아주 작은 틈을 통해 툭 삐져나오는 그 마음을 나는 귀신같이 포착하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불편해하는 사람을 아주 많이 보았다. 이렇게 생각하는 나를 문제 삼는 사람 역시 자주 만났다. 그들은 마치 짠 것처럼 똑같이 말했다. 그건 내 자격지심일 뿐이라고. 모든 노동은 가치 있고 신성하니 자긍심을 가지라고. 정말? 정말로 이 모든 게 내가 마음먹기에 달린 거라고? 그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라고 믿을 수 있는 그들의 세계가 어떤 날에는 진심으로 부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마트에서 버는 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글을 쓰고 책을 낸다. 마트 일은 기본적인 생활 정도만 가능하게 하는 월급을 주지만 글쓰기는 그조차 약속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작가로 존재할 때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낀 적은 거의 없다. 작가인 나는 내 직업을 아끼고 사랑한다. 그토록 바라던 보람과 성취가 이 일에는 있고, 그것들은 나의 자긍심이 된다. 그렇게 마음먹기 위해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의 직업을 긍정하기 위한 노력과 변화를 오직 개인의 몫으로 돌린다면 세상에는 아무리 애써도 긍정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 세상은 결국 모두의 삶을 조금씩 불만족스럽게 만들 수 밖에 없다. 이 모든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설명할 자신이 없어서 누군가 왜 마트에서 일하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그냥 돈 때문에 하는 건데요?"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게 전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