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평점 | ★★★★ |
| 한줄평 | 모두가 원하는 행복한 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과연 있기는 할까? |
우연히 이 책을 도서관 서가에서 발견했을 때, 당연히 책을 읽었고, 리뷰를 작성했을 것으로 확신했었다. 하지만, 제목으로는 검색되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다.
책이 리뷰를 남길 정도는 아니라서(별로라서) 또는 리뷰 쓰는 걸 잊어버렸던지.
읽었다고 확신했던 이유는 내용을 이미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해외에서 오랜 특파원 기자 생활을 한 저자가 문득 지구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찾아봐야겠다는 호기심으로 시작되었다. 그전에 주로 중동(시리아,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머물며 취재를 해왔던 배경도 있었다.
총 10개의 나라가 등장하는데, 내가 가본 곳은 7곳, 못가본 국가는 부탄, 카타르, 아이슬란드다. 읽으면서 내가 해당 국가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기억들과 오버랩되었고, 고개를 끄덕이고 소리를 내며 웃기도 했다.
특히 저자의 여행 경험담에서 그랬는데, 마치 빌브라이슨이 떠오르기도 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책을 읽기 전에 결론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행복에 절대적인 조건은 없다는 것을.
나도 한때 여행을 하면서,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맞는 장소(국가)를 찾으면 그곳에 정착을 하겠다고. 물론 기억에 남고 언젠가 다시 가보고 싶은 곳들은 여럿이 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어디서 죽고 싶어요?' 라는 물음의 대답으로 이 장소들은 어울리지 않는다.
저자가 만난 사람들이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은 모두 달랐다. 이 기준은 그들이 사는 국가, 사회, 문화, 자연환경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세계행복지수 국가순위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저자가 왜 갔는지 이유를 알 수 없는 몰도바에서도 행복을 느끼는 사람은 있다(개인적으로 좋은 인상으로 남아있지는 않지만).
'지금 행복하세요?' 라는 질문보다 '지금 죽고싶은 곳에 살고 있나요?' 라는 질문이 더 명확하게 다가온다.
앞으로 스스로의 기준이 흔들릴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려야 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
네덜란드
마약, 성매매, 자전거타기. 네덜란드에서는 이 세가지가 모두 합법이다. 그리고 안전을 위해 미리 조치를 취하기만 한다면, 이 세가지 모두 쉽사리 행복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자전거를 탈 때 헬멧을 쓰는 것이 그런 조치다. 그렇다면 셋 중에 무엇을 골라야 할까? 자전거 타기가 좋은 일임은 확실하다.그리고 네덜란드인들이 자전거를 사랑한다는 사실은 하느님도 알고 계신다. 하지만 바깥 날씨가 너무 춥다. 자전거를 타기에는. 그럼 성매매? 이 활동은 대개 실내에서 이루어지니까 날씨는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 활동 덕분에 몇몇 사람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내 아내가 문제다. 아내는 내 행복연구를 어느정도 지지해주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매춘부의 서비스를 받는 것은 왠지 아내가 지지해줄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것 같다. 그렇다면 마약이다.
스위스
그가 학생들에게 한 학기 동안 내내 스위스 내전을 다루겠다고 선언하자 학생들 중 절반이 일어나 나가버렸다. 그래서 스타인버그는 "심지어 내전조차 스위스에서 일어나면 지루한 모양"이라는 우울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스위스인들은 지루할 뿐만 아니라 유머도 없다. 어쩌면 내 생각이 틀린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열기로 하고 디터에게 묻는다(물론 외교적으로 말을 돌려서). 스위스인에게 유머 감각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유머 감각이라는 말의 의미를 정확히 말해주세요." 그가 즉각적으로 대답한다. 이것으로 얘기는 끝났다. 네덜란드인들이 마리화나와 성매매를 좋아한다면, 스위스인들은 규칙을 좋아한다. 스위스에는 일요일에 잔디밭을 깎거나 카펫을 털면 안 된다고 금지해놓은 지역이 많다. 발코니에 빨래를 너는 건 요일을 막론하고 전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밤 10시 이후에는 화장실 변기의 물을 내릴 수도 없다.
부탄
"부탄은 행복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우리는 다만 국민행복지수를 열심히 추구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게 우리 목표예요." "하지만 부탄에는 국민행복지수라는 말을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이 많아요. 특히 시골 사람들이 그렇죠." 내가 반격한다. "맞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의 삶 자체가 국민행복지수예요."
우리의 대화는 미국과 부탄 사이의 엄청난 경제적 격차 쪽으로 흘러간다. 미국인의 평균 수입은 부탄 사람 평균 수입의 거의 100배나 된다. "맞아, 그런데도 행복해 보여." 테리가 말한다. "등에 아이를 업고 길가에서 돌을 깨는 여자들조차 행복해보여. 우리가 차를 몰고 지나가면 미소를 짓잖아." 그들은 부탄사람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하려고 들어온 인도인 노동자들이다. 그럼에도 부탄사람들이 행복해 보이는 건 사실이다. "그럼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게 우리 생각보다 적은 게 아닐까요?" 내가 의견을 내놓는다. "아뇨, 이 사람들은 그저 더 나은 생활이 있다는 걸 모를 뿐이에요. 만약 이 사람들한테 미국을 보여주면, 자기들에게 없는 게 뭔지 깨달을 거예요." 나는 해외에서 공부한 부탄 사람들 중 90 퍼센트가 서구에서 고소득을 올릴 기회를 포기하고 이곳 부탄으로 돌아온다고 그녀에게 말한다. 혼란스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마침내 그녀가 말한다. "아니, 왜 그런데요?"
카타르
카타르라는 나라 전체가 훌륭한 공항 같다는 깨달음. 에어컨으로 온도가 쾌적하게 조절되고, 상점이 아주 많고, 다양한 음식을 먹을 수 있고,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똑같다. 나는 공항 세계에서 사는 공상을 자주 했다. 영화에서 톰 행크스가 맡았던 인물처럼 한 공항에서만 죽 사는게 아니라, 여러 공항을 계속 옮겨 다니며 사는 것이다. 항상 어딘가로 가기는 하는데 목적지에는 결코 도착하지 못하는 상태로. 하지만 공항라운지 같은 이 나라에서는 나의 공상이 덜 매력적이다. 인간은 설사 유목민이라 해도 고향이나 집이 필요하다. 집이 꼭 한 곳일 필요도 없고, 어떤 장소일 필요도 없지만 모든 집에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두가지 있다. 첫째, 공동체 의식. 그보다 더 중요한 두번째 요소는 역사.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항상 세금을 공평하게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세금이 어디에 얼마나 쓰이는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하지만 세금을 내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고액의' 세금이 좋다는 말은 아니다. 그냥 세금이라는 개념이 건전한 민주주의 체제를 위해 좋은 것이며, 필수적이라는 뜻일 뿐이다. '세금'은 투표의 또 다른 표현이다. 공무원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카타르 국민들은 "당신 월급은 내 돈에서 나가는 거야, 알아?"라며 그를 나무랄 수 없다. 카타르 국민들은 세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자기주장을 내세우지 못한다. 그건 행복한 일이 아니다.
"행복하세요?" "왜 그런 걸 묻는겁니까?" 이 질문이 카타르 같은 이슬람국가에서는 별로 적절하지 않다. 내가 이질문을 던지면 사람들이 조금 움찔하면서 정중하게 화제를 바꾸려 하는 것을 전에도 본 적이 있다. 이 사람들이 불편해하는건, 행복이 알라의 손에 달렸기 때문이다. 그건 사람의 일이 아니다. 우리가 행복하다면 그건 신의 뜻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불행하다면 그것 역시 신의 뜻이다. 또 다른 남자가 말한다. "진정한 행복을 알고 싶다면, 이슬람을 믿으세요. 신을 믿고, 모든 것이 신의 손에 달렸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알라께서 당신을 위해 마련하신 걸 얻게 될 거예요. 그래요, 행복을 알고 싶다면 이슬람을 믿어야 합니다." 어쩌면 굳이 신을 밎지 않더라도 그냥 무엇이든 믿는 것이 있을 때 행복해질 수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들(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 네덜란드)이 전혀 종교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이 나라는 석유와 천연가스라는 복권에 당첨되었다.그래서 이제는 일을 할 필요가 없다. 다른 복권 당첨자들과 마찬가지로, 카타르는 자신의 욕망을 채우고,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척이나 고교 동창들의 전화를 잘 받아넘기느라 많은 시간을 보낸다.
지난 세월동안 나는 제러드처럼 자신이 태어난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편안하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부탄에서 만난 린다 같은 사람. 그녀와 제러드는 난민이다. 억압적인 정권을 피해 도망친 정치적 난민도 아니고, 보수가 좋은 일자리를 찾아 국경을 넘은 경제적 난민도 아니다. 그들은 새로운 땅, 새로운 문화에서 더 행복하다는 이유로 삶의 터전을 옮긴 쾌락의 난민이다. 대캐 쾌락의 난민은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한다. 자기가 태어난 나라가 자기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추호의 의심도 없이 분명하게 깨닫는 순간.
몰도바
몰도바인들에게는 돈이 충분하지 않다. 인구 1인당 소득은 연간 880달러에 불과하다. 돈을 벌려면 외국으로 나가야 한다. 일부 몰도바 여성들은 속임수에 빠져 매춘부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현금을 얻으려고 콩팥 한쪽을 파는 몰도바인들도 있다. 물론 이건 전혀 좋은 상황이 아니다. 나는 몰도바인들이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을 깎아내릴 생각이 없다. 하지만 내가 여행을 하면서 배운 것이 있다면,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상황이 단순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점이다. 몰도바보다 가난한데도 더 행복한나라는 얼마든지 있다.나이지리아나 방글라데시가 좋은 예다. 문제는 몰도바인들이 자신을 나이지리아인이나 방글라데시인과 비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을 이탈리아인이나 독일인과 비교한다. 몰도바는 부자동네에 사는 가난한 사람이다. 이런 처지에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
"몰도바에 사는 사람들은 러시아인도 몰도바인도 아니에요. 모두들 우리를 괴롭히고 버렸죠. 우리는 자부심이라는 게 전혀 없어요. 심지어 우리말도 자랑스럽지 않아요. 몰도바 정부의 장관들 중에는 몰도바어를 못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들은 러시아어밖에 하지 못해요. 이런 말을 하기는 정말 싫지만, 몰도바의 문화라는 건 없어요. 그게 사실이에요." 이 말을 듣자마자 카타르가 생각났다. 그곳에도 문화가 없으니까.하지만 카타르는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돈이 많은 나라다. 몰도바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다. 모든 면에서 카타르의 형편이 더 낫다. 적어도 그 나라 사람들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잠시 빌려올 여유가 있으니까.
몰도바 사람들은 절망을 무디게 만들거나 아니면 하다못해 그럴듯한 이유를 대서 덜 괴롭게 만드는 표현을 많이 만들어냈다. 그중에서도 인기를 끄는 말이 'Ca la Moldova'다. '여긴 몰도바야'라는 뜻이다. 이 말과 더불어 짝을 이루는 표현으로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라는 뜻이다. 몰도바 사람들은 버스가 또 고장나거나 집주인이 아무 이유 없이 월세를 또 40달러 올려달라고 할 때 이 두가지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은 따로 있다. 'No este problema mea' 내가 걱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이 나라에는 문제가 이렇게나 많은데, 아무도 그걸 자기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도 나서지 않는다.
외국에서 온 고위 인사가 지옥을 둘러보게 되었다. 관광 안내인은 고위 인사를 미국인 방으로 안내했다. 뜨겁게 타오르는 솥단지에서 불꽃이 솟아오르고, 수십 명의 무장 경비원들이 그곳에 잡혀 있는 사람을 감시하고 있었다. "저쪽은 러시아인 방입니다." 이 방에도 불꽃이 솟아오르는 솥단지가 있었지만, 경비원 숫자는 적었다. "이쪽은 몰도바인 방입니다" 여기에도 역시 불꽃이 솟아오르는 솥단지가 있었지만, 경비원은 하나도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고위 인사가 말했다. "왜 몰도바인들을 감시하는 경비원이 없는거죠?" "아, 경비원은 필요 없습니다." 관광 안내인이 대답했다. "한 사람이 솥단지를 빠져나오면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다시 안으로 끌어 내리거든요." 행복의 적, 시기심이 몰도바에 만연해 있다.
몰도바에 관한 책은 거의 없다. 그중 한권의 저자인 찰스 킹은 이 나라를 가리켜 '조약으로 만들어진 나라'라고 말했다.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허구의 나라라고. 이 나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그 나라에 가서 거리를 걷고, 마마리가를 먹고, 형편없는 포도주를 마시고, 불행한 국민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는 있다. 하지만 이런 건 모두 중요하지 않다. 존재는 행복의 선행조건이라는게 내 생각이다. 자신을 사랑하려면 인종, 민족, 언어, 요리 중 무엇에 관해서든 정체감이 확고해야 한다.그래서 우리가 힘들 때 거기에 기댈 수 있다.
미국
누구에게는 낙원인 곳이 다른 사람에게는 지옥이 될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유럽 선교사들은 수백 년 전 이교도인 원주민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겠다는 꿈을 품고 그린란드에 처음 상륙했을 때, 다른 곳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원주민들에게 당근과 채찍을 함께 제시했다. 개종하면 천국의 자리를 얻을 수 있지만, 개종하지 않으면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 "지옥이라는 게 어떤 곳이죠?" 호기심을 느낀 그린란드 주민들이 물었다. "아, 아주, 아주 뜨거운 곳이에요." 선교사들이 대답했다. "항상 뜨거워요." 그린란드 주민들은 자기들의 고향, 즉 항상 얼어붙어 있는 북극의 툰드라를 둘러보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린 지옥으로 갈게요. 고마워요."
우리 모두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건 사실이지만, 행복의 이유가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하지만 공허한 삶보다는 풍요롭고 의미 있는 삶을 선택할 것이다. 행복하지만 공허한 삶이 가능한지는 잘 모르겠지만. "불행도 나름대로 역할이 있다."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이렇게 말한다. 옳은 말이다. 불행은 우리에게 위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의 상상력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불행이다. 아이슬란드가 증명하듯이, 불행도 나름대로 멋진 매력을 갖고 있다.
우리의 행복은 전적으로, 철저히 다른 사람들과 관련되어있다. 가족, 친구, 이웃, 게다가 우리가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무실 청소부까지도 모두. 행복은 명사도 동사도 아니다. 접속사다. 내가 100퍼센트 행복한 건 아니다. 아마 50 대 50에 가깝다고 말하면 될 것이다. 모든 걸 고려했을 때, 그 정도면 그리 나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