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연적 혼자의 시대
| 평점 | ★★★★ |
| 한줄평 | 나도 모르게 일이 곧 자아실현이고, 일이 곧 나자신이라고 믿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
지금까지 몇몇 사회학을 다룬 책들을 읽었을 때, 아쉬운 점은 논문(실제와는 괴리된)을 길게 풀어놓은 것 같다는 것이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그리고 핵개인 시대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이런 현상을 다룬 책들도 이미 꽤 나와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책들이 꾸준히 나오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이 현상에 대한 제대로된 해결책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은 혼자 태어나서 혼자 죽는다. 사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가족을 형성한다. 이 책은 1인 가구에 초점을 맞춘다.
읽으면서 좋았던 부분은 6년동안 다양한 계층의 1인 가구 대상자들을 만나 분석한 점이다. 탄탄한 백데이터를 토대로 제시한 논거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저자가 1인가구라는 점도 한 몫 했다).
나 역시 1인가구로 살고있는 터라, 많은 부분 공감을 할 수 있었고, 그동안 미쳐 생각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특히 1인 가구가 유리하다고 볼 수 있는 '여가시간'에 대한 부분에서 왜 일과 여가시간을 분리할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모르게 일이 곧 자아실현이고, 일이 곧 나자신이라고 믿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닐까?'
출간된지 2달이 안된 따끈따끈한 책이라서, 현상황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책이다.
기억에 남는 구절
개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이들의 삶은 주체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인다. 자아실현을 위해 커리어에 집중했고, 일이 성취감을 주기 때문에 생활환경도 일에 맞춰나갔다. 그러나 21명의 싱글 직장인들의 삶에서 반복되는 현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왜 이들은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일보다도, 편안한 집에 사는 것보다도, 깊은 휴식을 취하는 것보다도 일을 우선시하게 되었을까? 인터뷰 참여자들은 "재미있어서" 혹은 "의미 있어서"라고 답한다. 하지만 이 대답은 그들이 왜 유독 일에서 재미와 의미를 찾게 되었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여기에는 보이지 않은 힘(통치성)이 작용하고 있다. 이것은 개개인의 인식과 행동을 통솔하는 힘이다. 겉으로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 같지만, 실은 사회가 바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다. 신자유주의 사회의 통치성은 우리를 '자유로운 개인'으로 호명한다. 구조에 지배받지 않고 얼마든지 삶이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사회가 제시한 선택지에는 이미 효율성, 성과, 경쟁, 자기계발, 기업가 정신 같은 가치들이 디폴트 값으로 깔려있다. 사람들은 이 선택지를 체크하면서 자발적인 선택이라고 믿는다. 통치성은 우리의 감정, 관계, 언어, 일상의 사소한 습관에까지 파고든다. 통치성은 경수 씨가 퇴근하자마자 노트북을 펼치고 다시 일하는 습관 속에도, 세현 씨가 커리어를 쌓기 위해 아무도 시키지 않은 야근을 하는 책상 위에서도 존재한다. 그 누구도 이들에게 가족보다 일을 택하라고 협박하지 않았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적 가치들을 내면화하면서 그들은 이 선택을 최선이라 믿게되었다. 싱글라이프는 신자유주의가 울리는 성장과 효율의 북소리를 따라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모습을 하고 있다. 가족 부양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은 더 극단적인 방식으로 노동에 포획된다.
여가에서도 생산성을 추구하는 경향은 몸과 마음을 닳게 한다. 본래 여가시간은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인간이 유한한 몸을 회복하고, 정서적 평안을 되찾기 위해 반드시 주어져야 할 시간이다. 내가 만난 비혼 직장인들의 여가가 그랬다. 이들의 여가는 철저히 생산을 위한 재생산으로 축소되어 있어,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회복의 시간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죄책감과 불안감을 덜어주는 가장 완벽한 여가 활동은 자기계발이다. 현재의 업무에 도움이 되고, 미래의 커리어를 준비하는 자기계발은 싱글 직장인들이 여가시간을 보내는 흔한 방식이다. 바우만은 후기 산업사회에 개인들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하는 모습을 쇼핑에 비유한다. 늘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지만 결코 만족에 이르지 못하는, 일종의 쇼핑중독이라는 것이다.
1인가구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하나의 긴밀한 순환구조가 보인다(위 그림). 바로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1인가구 노동자들의 자기생산-자기재생산 메커니즘이다. 이를 그리면 신자유주의 경제구조와 신자유주의적 자기실천이라는 톱니바퀴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시스템이 완성된다. 불안정한 노동시장과 성과 중심의 조직문화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기계발에 매진하고 일을 자아실현의 통로이자 자아정체성으로 여긴다. 성과경쟁으로 소진된 마음은 자기힐링으로 재생시킨다. 될 수 있으면 쓸데없는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 위해 직장 가까이에 살고 타인과는 거리 두는 삶을 택한다. 전통적인 재생산 활동인 가사를 최소화하기 위해 서비스 플랫폼이나 원가족에게 외주화한다. 거대한 사회구조가 우리를 감싸고, 우리 각자는 이를 온몸으로 받아낸다. 이 현대사회의 자가발전기 안에서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자기를 생산하고, 소모하고, 재생산하며 쳇바퀴를 돈다. 그렇게 가족이 더 이상 노동의 동기가 되지 못하는 혼자의 시대에서도 자본주의의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간다.
많은 이들이 낯선 타인과의 교류를 불편해한다. 누군가를 의무감으로 만나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여긴다. 그래서 고소득 1인가구들은 비슷한 취향의 친구들을 선별해 사귀면서 자신과 다른 사람들과의 불필요한 접촉을 줄이곤 한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들이 모여 결국 사회적 고립을 심화시키기도 한다. 반면 저소득 1인가구들은 경제적 결핍 때문에 부득이하게 사회복지제도에 기댈 수 밖에 없고,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과 의무적인 교류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한 선택이 이들의 사회자본을 회복시켰다. 어떤 맥락에서 시작되었든 새롭게 형성된 사회자본은 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공부 열심히하고 일 열심히 하면, 돈이 뒤따르고, 모든 게 해결될 것이다!" 그 신화가 유효하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 우리는 그럼 이제 무엇을 믿어야 할지 몰라서 불안해진다. 배우 짐 캐리는 어느 시상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두가 유명해지고 부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게 답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하기 위해"
제가 "청소를 안 해놨다. 집이 더러울 거다" 그랬더니 "그러면 좋지. 엄마 아빠가 너를 위해 해줄 게 있으니까" 그 말을 듣는데 '자녀에게는 이게 가능한 거구나. 자녀를 위해 요리하고 청소하는 거를 30년을 지속했는데도, 여전히 에너지가 남아 있을 수 있는 거구나' 라는 걸 느꼈죠.
꽤 많은 중.저소득 1인가구들은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 절충적인 전략을 택한다. "밥은 전기밥솥으로 하고 반찬만 사먹는" 것이다.이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진정으로 가성비가 높은 식사다. 밥솥으로 밥만 짓더라도 매끼 갓 지어 먹기는 번거롭다. 그래서 밥을 지은 다음 소분해서 냉동해 뒀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먹는 경우가 많다.
왜 1인가구에게는 돈이 삶의 질로 쉽게 전환되지 않을까? 이들이 돈으로 주로 구매하는 것이 삶의 질이 아닌 편리함이기 때문이다. 배달음식, 간편식, 세탁서비스, 각종 플랫폼들은 살림의 번거로움을 대신해 주겠다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편의들은 삶을 돌보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가사에 투입될 시간은 아껴주지만, 정작 확보된 시간은 자기를 돌보는 데 사용되기보다 노동시간으로 다시 흡수된다. 그 결과 일상의 돌봄은 점점 더 외면당한다. 돈을 더 벌고 더 쓰는데도 여유로움이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소득수준과 무관하게 1인가구의 의식주 소비를 지배하는 기준은 가성비다.
1인가구는 자신의 지난 인생과 죽음을 기려줄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이런 이유로 연구에 참여한 1인가구들은 적어도 죽기 전에 자기 삶을 스스로 돌아볼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여겼다. '노트 한 권이라도 '나'라는 사람에 대해 기록을 남기고 써나가도 너무 의미 있을 것 같아요. 죽기 전에 그걸 하면서 여러 생각도 들 것 같고, 그동안 살아온 것에 대해 저 자신을 미리 애도한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